6·25 최후의 ‘425 고지 전투’ 회고
입력 2013.07.24 (21:31)
수정 2013.07.24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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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60년 전 정전협정이 체결되기 바로 직전까지도 강원도 동부전선에서는 한 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한 남북간의 치열한 접전이 있었습니다.
이 와중에 6.25 전쟁의 마지막 승전보를 전해온 전투가 있었는데 바로 425 고지 전투였습니다.
박진영 기자가 소개합니다.
<리포트>
정전협정 체결 직전인 1953년 7월 중순.
조금 더 높고, 조금 더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는 이른바 '고지전'은 절정에 달했습니다.
한 뼘의 땅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한 치열한 전투에 많은 희생이 뒤따랐습니다.
강원도 화천과 철원 경계 지역에 위치한 425고지에서도 53년 7월 20일부터 8일 동안 사활을 건 교전이 벌어졌습니다.
당시 남한 전력 생산의 30퍼센트를 담당하던 화천발전소를 차지하기 위해 김일성은 고지 탈환을 지시했고, 이승만 대통령도 직접 사령부를 방문해 국군을 독려했습니다.
<녹취> 홍승민(육군 7사단 5연대 2대대장) : "전략적인 요충지로서 하루 밤낮에도 여러 번 주인이 바뀌었던 중요한 전투가 되겠습니다."
당시 중국군 135사단의 파상공격에 국군 7사단은 백병전으로 맞섰습니다.
특히 고 김한준 대위는 부대원 160여 명을 이끌고 중국군 950여 명을 사살해 전쟁 막판 최고의 영웅이 됐습니다.
<인터뷰> 양옥자(故 김한준 대위 미망인) : "(남편이)살아 생전에 못 온 것이 아쉽긴 하지만 오게 된 것이 진정 기쁘고 감사합니다."
정전협정 당일까지도 계속된 425 고지전...
국군은 결국 화천발전소를 사수했고, 38선에서 35km 북으로 올라간 곳까지 영토를 확보했습니다.
KBS 뉴스 박진영입니다.
60년 전 정전협정이 체결되기 바로 직전까지도 강원도 동부전선에서는 한 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한 남북간의 치열한 접전이 있었습니다.
이 와중에 6.25 전쟁의 마지막 승전보를 전해온 전투가 있었는데 바로 425 고지 전투였습니다.
박진영 기자가 소개합니다.
<리포트>
정전협정 체결 직전인 1953년 7월 중순.
조금 더 높고, 조금 더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는 이른바 '고지전'은 절정에 달했습니다.
한 뼘의 땅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한 치열한 전투에 많은 희생이 뒤따랐습니다.
강원도 화천과 철원 경계 지역에 위치한 425고지에서도 53년 7월 20일부터 8일 동안 사활을 건 교전이 벌어졌습니다.
당시 남한 전력 생산의 30퍼센트를 담당하던 화천발전소를 차지하기 위해 김일성은 고지 탈환을 지시했고, 이승만 대통령도 직접 사령부를 방문해 국군을 독려했습니다.
<녹취> 홍승민(육군 7사단 5연대 2대대장) : "전략적인 요충지로서 하루 밤낮에도 여러 번 주인이 바뀌었던 중요한 전투가 되겠습니다."
당시 중국군 135사단의 파상공격에 국군 7사단은 백병전으로 맞섰습니다.
특히 고 김한준 대위는 부대원 160여 명을 이끌고 중국군 950여 명을 사살해 전쟁 막판 최고의 영웅이 됐습니다.
<인터뷰> 양옥자(故 김한준 대위 미망인) : "(남편이)살아 생전에 못 온 것이 아쉽긴 하지만 오게 된 것이 진정 기쁘고 감사합니다."
정전협정 당일까지도 계속된 425 고지전...
국군은 결국 화천발전소를 사수했고, 38선에서 35km 북으로 올라간 곳까지 영토를 확보했습니다.
KBS 뉴스 박진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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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 최후의 ‘425 고지 전투’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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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3-07-24 21:29:11
- 수정2013-07-24 22: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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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60년 전 정전협정이 체결되기 바로 직전까지도 강원도 동부전선에서는 한 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한 남북간의 치열한 접전이 있었습니다.
이 와중에 6.25 전쟁의 마지막 승전보를 전해온 전투가 있었는데 바로 425 고지 전투였습니다.
박진영 기자가 소개합니다.
<리포트>
정전협정 체결 직전인 1953년 7월 중순.
조금 더 높고, 조금 더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는 이른바 '고지전'은 절정에 달했습니다.
한 뼘의 땅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한 치열한 전투에 많은 희생이 뒤따랐습니다.
강원도 화천과 철원 경계 지역에 위치한 425고지에서도 53년 7월 20일부터 8일 동안 사활을 건 교전이 벌어졌습니다.
당시 남한 전력 생산의 30퍼센트를 담당하던 화천발전소를 차지하기 위해 김일성은 고지 탈환을 지시했고, 이승만 대통령도 직접 사령부를 방문해 국군을 독려했습니다.
<녹취> 홍승민(육군 7사단 5연대 2대대장) : "전략적인 요충지로서 하루 밤낮에도 여러 번 주인이 바뀌었던 중요한 전투가 되겠습니다."
당시 중국군 135사단의 파상공격에 국군 7사단은 백병전으로 맞섰습니다.
특히 고 김한준 대위는 부대원 160여 명을 이끌고 중국군 950여 명을 사살해 전쟁 막판 최고의 영웅이 됐습니다.
<인터뷰> 양옥자(故 김한준 대위 미망인) : "(남편이)살아 생전에 못 온 것이 아쉽긴 하지만 오게 된 것이 진정 기쁘고 감사합니다."
정전협정 당일까지도 계속된 425 고지전...
국군은 결국 화천발전소를 사수했고, 38선에서 35km 북으로 올라간 곳까지 영토를 확보했습니다.
KBS 뉴스 박진영입니다.
60년 전 정전협정이 체결되기 바로 직전까지도 강원도 동부전선에서는 한 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한 남북간의 치열한 접전이 있었습니다.
이 와중에 6.25 전쟁의 마지막 승전보를 전해온 전투가 있었는데 바로 425 고지 전투였습니다.
박진영 기자가 소개합니다.
<리포트>
정전협정 체결 직전인 1953년 7월 중순.
조금 더 높고, 조금 더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는 이른바 '고지전'은 절정에 달했습니다.
한 뼘의 땅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한 치열한 전투에 많은 희생이 뒤따랐습니다.
강원도 화천과 철원 경계 지역에 위치한 425고지에서도 53년 7월 20일부터 8일 동안 사활을 건 교전이 벌어졌습니다.
당시 남한 전력 생산의 30퍼센트를 담당하던 화천발전소를 차지하기 위해 김일성은 고지 탈환을 지시했고, 이승만 대통령도 직접 사령부를 방문해 국군을 독려했습니다.
<녹취> 홍승민(육군 7사단 5연대 2대대장) : "전략적인 요충지로서 하루 밤낮에도 여러 번 주인이 바뀌었던 중요한 전투가 되겠습니다."
당시 중국군 135사단의 파상공격에 국군 7사단은 백병전으로 맞섰습니다.
특히 고 김한준 대위는 부대원 160여 명을 이끌고 중국군 950여 명을 사살해 전쟁 막판 최고의 영웅이 됐습니다.
<인터뷰> 양옥자(故 김한준 대위 미망인) : "(남편이)살아 생전에 못 온 것이 아쉽긴 하지만 오게 된 것이 진정 기쁘고 감사합니다."
정전협정 당일까지도 계속된 425 고지전...
국군은 결국 화천발전소를 사수했고, 38선에서 35km 북으로 올라간 곳까지 영토를 확보했습니다.
KBS 뉴스 박진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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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 기자 parkj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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