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커플링·디리스킹·145% 관세 폭탄, 그 다음은?
입력 2025.04.24 (07:00)
수정 2025.04.2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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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관세를 부과하면, 시진핑도 똑같은 숫자로 받아쳤습니다.
10%에서 시작했던 것 같은데, 순식간에 미국과 중국 양국 관세는 각각 145%, 125%가 되었습니다.
세계 최대 두 경제 대국 간 무역 전쟁의 규모도, 속도도 예전과 달라졌습니다. 시장은 놀라서 요동칩니다.
더 놀라운 일은 중국의 태도입니다.
현대 역사상(근대에는 이런 일이 적지 않았으니) 가장 큰 무역 혼란의 방아쇠를 담긴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당황한 듯 하다는 보도가 나옵니다. 중국은 "대화에 열려있다"는 말로 늘 말을 매듭짓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금 이대론 미국과 협상을 할 뜻이 보이지 않습니다.
초기만 하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에 중국은 협상 타결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습니다. 미국의 모든 물품에 관세를 부과하지도 않았고, 기존에 해왔던 관세 조치에 무게를 조금 더 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후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중국은 트럼프가 내는 패에 똑같은 패로 앙갚음하고 있습니다. 중국 지도자들 사이에선 무역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있는 걸까요?
■트럼프 1기 목표였던 '디커플링'
중국은 이미 트럼프 1기를 겪어봤다고 얘기합니다. '디커플링'을 겪었다는 겁니다. 한동안 엄청나게 쓰이다가 이젠 잠시 잊혀진 용어 디커플링은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경제참모들이 중국과의 무역전쟁, 기술전쟁을 전면화하면서 사용한 용어입니다.
지금 백악관의 관세 전쟁을 설계한 것으로 알려진 피터 나바로 경제 고문, 당시엔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은 '디커플링'을 기술, 안보, 공급망 전반에서 미국과 중국을 분리해야 한다는 전략 개념으로 사용했습니다.
미중 간 전략적, 경제적, 기술적 단절을 의미하는 상징적 언어로 쓰인 '디커플링' 기조는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미국에서도 그대로 적용됐습니다.
■'디커플링'이 불편한 중국…바이든 정부서 '디리스킹' 으로 용어 변화돼
중국 외교부는 여러 차례에 걸쳐 “디커플링은 누구에게도 이익이 되지 않는다”며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시진핑 주석은 디커플링을 공급망을 인위적으로 끊는 위험한 시도로 규정하며, 이는 글로벌화에 반하는 행동이라고 지적했습니다. 2022년 APEC 정상회의에서 “중국은 결코 디커플링을 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높은 수준의 개방을 추구한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관영매체인 환구시보는 디커플링을 신냉전 전략의 일환이라고 표현했고, 특히 미국이 반도체, 5G, AI 등 전략기술 분야에서 중국을 배제하려는 조치에 대해 “기술적 봉쇄”라고 비난했습니다.
이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유엔 연설에서 중국과의 경제 관계에 대해 "디커플링(decoupling)"이 아닌 "디리스킹(de-risking)"을 추구한다, 즉 양국 간의 완전한 단절이 아니라, 특정 분야에서의 위험을 줄이기 위함이다 라고 톤을 낮췄습니다.
미국 국가안보보좌관 제이크 설리번 역시 "디리스킹(위험 분산)은 효과적이고 회복력 있는 공급망을 확보하고, 다른 국가의 강압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디커플링'이 중국과의 전면전이라면 '디리스킹'은 시간을 두고 공급망을 재편해 나가겠다는 지연 전략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바이든 행정부는 유럽 등 동맹국들을 결집해 중국과의 경제적 분리를 해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단순히 중국과 미국과의 분리를 넘어서 서방 전체 공급망에서의 중국을 배제하는 게 불가능한 현실 속에서 특정 기술 분야에서의 중국의 추격을 늦추겠다는 전략으로 바꾼 것으로 풀이됩니다.
트럼프든 바이든이든, 미국 경제가 중국에 추격당하고 있다는 불안은 현실입니다. 둘 다 미국에 제조업을 되살리고, 투자를 늘려서 다시금 자강(自强)을 이루자는 목표는 같습니다.
■중국의 자신감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크리스마스까지 버텨보자?"
그런데 이 중국이 녹록치 않습니다.

중국에선 "크리스마스까지 버텨보자"는 얘기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습니다. 제 아무리 미국이 중국의 모든 물품에 145% 관세를 때리더라도 미국의 최대 쇼핑 대목인 핼러윈과 성탄을 버틸 수 없을 거란 말입니다.
핼러윈과 성탄절에 미국에서 소비되는 플라스틱 호박 바구니부터 시작해 아롱다롱 색색의 전구들, 모두 중국에서 만드는 겁니다. 중국에서 만들어진 온갖 소비 지향적 물품들,지금까지는 10달러에 살 수 있었다면, 이젠 2.5배를 내야 하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미국이 관세로 인한 인플레이션과 경제적 불만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일부에서는 위안화 강세를 통해 상황을 악화시킬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도 합니다. 달러화는 역대급으로 약해진 상황입니다. 중국은 그간 브릭스 국가들과 아프리카, 태평양 도서들과 거래하며 위안화의 입지를 상당히 다져왔습니다. 그러나 환율 조작은 앞으로의 중국 경제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쉬운 카드는 아닐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인 만큼 정부의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시 주석의 대리인인 리챵은 지난 3월 중국이 "예상보다 큰 외부 충격"에 대비하고 있으며 경제 안정을 보장하기 위한 정책을 시행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금리인하, 보조금, 채권 발행, 국영 기업들의 주식 매입 등 사용할 수 있는 카드는 많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이후 급격한 둔화를 불러올 수 있는 만큼 독과가 될 수 있습니다.
■그동안 비판해온 '디커플링' 이제는 중국이 먼저 하려나?
중국은 미국의 '디커플링' '디리스킹' 전략 이후로 기술 자립을 추구해 오며 실제로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홍보하고 있습니다. 화웨이의 AI 칩이나 BYD의 배터리 같은 것들은 미국의 디커플링으로 인해 만들어진 강력한 '자강' 의 산물로 해석됩니다.
트럼프의 폭탄관세에 맞서 "끝까지 싸우겠다"고 항전 의지를 다지는 시진핑 주석에게 중국 내 지지도는 오르고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이 실제로 중국 경제가 미국 경제와 완전히 분리되는 것까지 감수하려는 것인지는 지켜봐야 할 문젭니다. 트럼프도 "어, 이게 아닌데" 하고 살짝 조급해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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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5-04-24 07:00:23
- 수정2025-04-24 07:00:45

트럼프가 관세를 부과하면, 시진핑도 똑같은 숫자로 받아쳤습니다.
10%에서 시작했던 것 같은데, 순식간에 미국과 중국 양국 관세는 각각 145%, 125%가 되었습니다.
세계 최대 두 경제 대국 간 무역 전쟁의 규모도, 속도도 예전과 달라졌습니다. 시장은 놀라서 요동칩니다.
더 놀라운 일은 중국의 태도입니다.
현대 역사상(근대에는 이런 일이 적지 않았으니) 가장 큰 무역 혼란의 방아쇠를 담긴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당황한 듯 하다는 보도가 나옵니다. 중국은 "대화에 열려있다"는 말로 늘 말을 매듭짓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금 이대론 미국과 협상을 할 뜻이 보이지 않습니다.
초기만 하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에 중국은 협상 타결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습니다. 미국의 모든 물품에 관세를 부과하지도 않았고, 기존에 해왔던 관세 조치에 무게를 조금 더 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후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중국은 트럼프가 내는 패에 똑같은 패로 앙갚음하고 있습니다. 중국 지도자들 사이에선 무역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있는 걸까요?
■트럼프 1기 목표였던 '디커플링'
중국은 이미 트럼프 1기를 겪어봤다고 얘기합니다. '디커플링'을 겪었다는 겁니다. 한동안 엄청나게 쓰이다가 이젠 잠시 잊혀진 용어 디커플링은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경제참모들이 중국과의 무역전쟁, 기술전쟁을 전면화하면서 사용한 용어입니다.
지금 백악관의 관세 전쟁을 설계한 것으로 알려진 피터 나바로 경제 고문, 당시엔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은 '디커플링'을 기술, 안보, 공급망 전반에서 미국과 중국을 분리해야 한다는 전략 개념으로 사용했습니다.
미중 간 전략적, 경제적, 기술적 단절을 의미하는 상징적 언어로 쓰인 '디커플링' 기조는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미국에서도 그대로 적용됐습니다.
■'디커플링'이 불편한 중국…바이든 정부서 '디리스킹' 으로 용어 변화돼
중국 외교부는 여러 차례에 걸쳐 “디커플링은 누구에게도 이익이 되지 않는다”며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시진핑 주석은 디커플링을 공급망을 인위적으로 끊는 위험한 시도로 규정하며, 이는 글로벌화에 반하는 행동이라고 지적했습니다. 2022년 APEC 정상회의에서 “중국은 결코 디커플링을 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높은 수준의 개방을 추구한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관영매체인 환구시보는 디커플링을 신냉전 전략의 일환이라고 표현했고, 특히 미국이 반도체, 5G, AI 등 전략기술 분야에서 중국을 배제하려는 조치에 대해 “기술적 봉쇄”라고 비난했습니다.
이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유엔 연설에서 중국과의 경제 관계에 대해 "디커플링(decoupling)"이 아닌 "디리스킹(de-risking)"을 추구한다, 즉 양국 간의 완전한 단절이 아니라, 특정 분야에서의 위험을 줄이기 위함이다 라고 톤을 낮췄습니다.
미국 국가안보보좌관 제이크 설리번 역시 "디리스킹(위험 분산)은 효과적이고 회복력 있는 공급망을 확보하고, 다른 국가의 강압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디커플링'이 중국과의 전면전이라면 '디리스킹'은 시간을 두고 공급망을 재편해 나가겠다는 지연 전략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바이든 행정부는 유럽 등 동맹국들을 결집해 중국과의 경제적 분리를 해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단순히 중국과 미국과의 분리를 넘어서 서방 전체 공급망에서의 중국을 배제하는 게 불가능한 현실 속에서 특정 기술 분야에서의 중국의 추격을 늦추겠다는 전략으로 바꾼 것으로 풀이됩니다.
트럼프든 바이든이든, 미국 경제가 중국에 추격당하고 있다는 불안은 현실입니다. 둘 다 미국에 제조업을 되살리고, 투자를 늘려서 다시금 자강(自强)을 이루자는 목표는 같습니다.
■중국의 자신감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크리스마스까지 버텨보자?"
그런데 이 중국이 녹록치 않습니다.

중국에선 "크리스마스까지 버텨보자"는 얘기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습니다. 제 아무리 미국이 중국의 모든 물품에 145% 관세를 때리더라도 미국의 최대 쇼핑 대목인 핼러윈과 성탄을 버틸 수 없을 거란 말입니다.
핼러윈과 성탄절에 미국에서 소비되는 플라스틱 호박 바구니부터 시작해 아롱다롱 색색의 전구들, 모두 중국에서 만드는 겁니다. 중국에서 만들어진 온갖 소비 지향적 물품들,지금까지는 10달러에 살 수 있었다면, 이젠 2.5배를 내야 하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미국이 관세로 인한 인플레이션과 경제적 불만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일부에서는 위안화 강세를 통해 상황을 악화시킬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도 합니다. 달러화는 역대급으로 약해진 상황입니다. 중국은 그간 브릭스 국가들과 아프리카, 태평양 도서들과 거래하며 위안화의 입지를 상당히 다져왔습니다. 그러나 환율 조작은 앞으로의 중국 경제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쉬운 카드는 아닐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인 만큼 정부의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시 주석의 대리인인 리챵은 지난 3월 중국이 "예상보다 큰 외부 충격"에 대비하고 있으며 경제 안정을 보장하기 위한 정책을 시행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금리인하, 보조금, 채권 발행, 국영 기업들의 주식 매입 등 사용할 수 있는 카드는 많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이후 급격한 둔화를 불러올 수 있는 만큼 독과가 될 수 있습니다.
■그동안 비판해온 '디커플링' 이제는 중국이 먼저 하려나?
중국은 미국의 '디커플링' '디리스킹' 전략 이후로 기술 자립을 추구해 오며 실제로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홍보하고 있습니다. 화웨이의 AI 칩이나 BYD의 배터리 같은 것들은 미국의 디커플링으로 인해 만들어진 강력한 '자강' 의 산물로 해석됩니다.
트럼프의 폭탄관세에 맞서 "끝까지 싸우겠다"고 항전 의지를 다지는 시진핑 주석에게 중국 내 지지도는 오르고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이 실제로 중국 경제가 미국 경제와 완전히 분리되는 것까지 감수하려는 것인지는 지켜봐야 할 문젭니다. 트럼프도 "어, 이게 아닌데" 하고 살짝 조급해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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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순 기자 ysooni@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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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발 ‘관세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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