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협상 중 ‘환율’ 갑툭튀…미국 노림수는?

입력 2025.04.27 (08:00) 수정 2025.04.2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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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자기 튀어나온 '환율 협의'

이틀 전이었죠.

한국 시각으로는 25일 새벽, 미국 시각으로는 24일 저녁, 한국과 미국의 '2+2 통상 협의' 결과에 대한 브리핑이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렸습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와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른바 '7월 패키지를 언급했습니다. 미국이 관세를 없애거나 깎아줄지, 그러면 한국은 뭘 대가로 내놓을지를 한꺼번에 주고받기로 했다는 겁니다.

논의의 틀도 정했습니다. ①관세, ②경제 안보, ③투자 협력, ④환율 등 4대 의제를 7월까지 협의해나가기로 했다는 겁니다.

4대 의제가 나오자, 당장 '환율'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다른 3가지 의제는 우리 대표단도 익히 예상했지만, 환율은 가능성을 낮게 봤기 때문입니다.

환율, 뭘 어떻게 협의?

예상 밖의 안건이었던 만큼, 브리핑에서도 질문이 잇따랐습니다.

최상목 부총리는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이 재무부 간 별도로 환율을 논의하자고 먼저 얘기했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구체적인 내용이 논의된 건 아니"라며, "양국 재무부 간 별도 실무협의를 하기로 방침을 정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실무자들끼리는 더 속 깊은 얘기를 하진 않았을까. KBS는 정부 대표단에 참여한 여러 기재부 관계자에게 물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미국이 이슈를 명확히 하지는 않은 것 같다. 내부 논의 중으로 보인다"는 답만 돌아왔습니다.

기재부의 설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미국이 환율을 협의하자고 던져만 놓고 뭘 어떻게 협의하자는 건지에 대해선 아직 말이 없다는 설명입니다.


미국은 대체 뭘 노리는 걸까요?

현지 시각 20일,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SNS를 통해 다른 나라들이 저지르는 8대 '비관세 부정행위'를 꼽았습니다. 그 첫머리가 '환율 조작'이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환율 조작을 언급한 건 이번만이 아닙니다. 한국을 비롯해 일본, 중국 등 미국에서 무역 흑자를 버는 나라는 죄다 환율 조작국이라는 식의 발언을 여러 차례 했습니다.

한국이 미국을 상대로 그렇게 많은 무역 흑자를 버는데, 어떻게 달러화가 강하고 원화가 약할 수 있냐(원·달러 환율이 어떻게 안 떨어질 수 있냐), 결국 환율을 조작하기 때문 아니냐는 주장입니다.

다만, 이번 '2+2 통상 협의'에서는 환율 조작은 직접적으로 거론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환율 조작 문제와 관련한 미국 측 언급이 있었냐는 질문에 최 부총리는 "전혀 그런 내용은 없었다"고 답했습니다.

1. 제2의 플라자합의?

미국이 관세를 밀어붙이는 것도, 환율 조작을 거론하는 것도, 배경은 매한가지입니다. 자신들의 막대한 재정 적자와 무역 적자 때문입니다.

미국의 재정 적자는 2020년 3.1조 달러로 역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했고, 2023년 1.7조 달러 규모로 줄기는 했지만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보다도 높습니다.

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은 138%. 일본, 그리스, 이탈리아 다음으로 높은 수준입니다.

무역 적자도 사상 최대입니다.

지난해 미국 무역 적자는 9,184억 달러, 1년 전보다 17% 늘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를 높여 수입을 막든지, 달러 가치를 떨어뜨려서 수입 가격을 높이고 수출 가격은 낮추는 걸 노리는 겁니다.

1985년 9월 22일, 미국은 프랑스, 서독, 영국, 일본 재무장관들을 뉴욕 맨해튼의 플라자 호텔로 불러들입니다. 다른 나라 통화 가치, 특히 엔화 가치를 대폭 올리기로 밀어붙여 합의를 끌어냅니다. 1달러에 250엔 하던 달러-엔 환율을 1달러에 120엔으로 바꿔버립니다.

40년 전 그 합의를 다시 추진할 수 있다는 '제2의 플라자합의' 가능성이 거론됩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윤상하 국제거시금융실장은 "미국이 애초에는 관세를 올리면 달러가 강세로 갈 거다, 그러니까 달러 약세를 위해 제2의 플라자 합의 같은 것도 투트랙으로 써보자 이런 구상을 했을 수도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윤 실장은 다만 "플라자 합의 같은 걸 성사하려면 관계국들이 신뢰와 합의가 있어야 하는데, 역사적으로 드문 일이다"고 지적했습니다. "의도적으로 환율을 낮추려면 시장에 누군가 개입해야 하는데 이건 외환시장 안정성 측면에서 감당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2. 기준금리 압박?

한국의 기준금리까지 압박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미즈호 은행 변정규 전무는 "트럼프 대통령 1기 때도 환율에 민감했다"며 "통화정책은 한국은행 몫이기는 하지만, 금리에 대한 압박이 있을 수 있다. 하반기에 마음대로 기준금리를 못 내릴 수도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현재 미국의 기준금리는 4.5%, 한국 2.75%와는 여전히 차이가 큽니다. 미국에 투자하면 그만큼 이자를 많이 받을 수 있다는 의미. 미국 달러가 강해지는 이유가 됩니다.

만약 기준금리를 건드려서 원화 강세를 유도하려면,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지금보다 더 올려야 합니다. 경기 침체 징후가 짙어진 우리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요구입니다.


3. 막무가내식 트집잡기?

관세 협상을 위한 트집잡기일 수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이승헌 숭실대 경영대학원 교수(전 한국은행 부총재)는 "미국이 환율을 문제 삼았는데 특별한 해법이 없다"며 "지금 우리는 오히려 원화 약세, 고환율 때문에 문제고 미국도 이 상황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미국이 한국을 환율 조작국이라고 지정할 가능성도 작다고 봤습니다.

이승헌 교수는 "우리가 일부러 원화 약세를 만들기 위해서 시장에 개입하는 게 아니라는 것은 명확하고, 당국에서도 그걸 충분히 설명할 것"이라며 "미국 재무부도 모니터링을 해오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트럼프 1기 때도 FTA 재협상을 할 때 우리가 환율에 개입한다고 트집을 잡으며 그걸 무기로 압박했다"며 "지금도 비슷한 상황으로 보인다"고 덧붙였습니다.

실제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선 한미 FTA 재협상을 추진하면서 강력한 환율 개입 방지 조항이 포함될 것으로 전망했지만, 최종 합의문에는 환율 관련 조항은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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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25-04-27 08: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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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자기 튀어나온 '환율 협의'

이틀 전이었죠.

한국 시각으로는 25일 새벽, 미국 시각으로는 24일 저녁, 한국과 미국의 '2+2 통상 협의' 결과에 대한 브리핑이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렸습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와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른바 '7월 패키지를 언급했습니다. 미국이 관세를 없애거나 깎아줄지, 그러면 한국은 뭘 대가로 내놓을지를 한꺼번에 주고받기로 했다는 겁니다.

논의의 틀도 정했습니다. ①관세, ②경제 안보, ③투자 협력, ④환율 등 4대 의제를 7월까지 협의해나가기로 했다는 겁니다.

4대 의제가 나오자, 당장 '환율'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다른 3가지 의제는 우리 대표단도 익히 예상했지만, 환율은 가능성을 낮게 봤기 때문입니다.

환율, 뭘 어떻게 협의?

예상 밖의 안건이었던 만큼, 브리핑에서도 질문이 잇따랐습니다.

최상목 부총리는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이 재무부 간 별도로 환율을 논의하자고 먼저 얘기했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구체적인 내용이 논의된 건 아니"라며, "양국 재무부 간 별도 실무협의를 하기로 방침을 정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실무자들끼리는 더 속 깊은 얘기를 하진 않았을까. KBS는 정부 대표단에 참여한 여러 기재부 관계자에게 물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미국이 이슈를 명확히 하지는 않은 것 같다. 내부 논의 중으로 보인다"는 답만 돌아왔습니다.

기재부의 설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미국이 환율을 협의하자고 던져만 놓고 뭘 어떻게 협의하자는 건지에 대해선 아직 말이 없다는 설명입니다.


미국은 대체 뭘 노리는 걸까요?

현지 시각 20일,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SNS를 통해 다른 나라들이 저지르는 8대 '비관세 부정행위'를 꼽았습니다. 그 첫머리가 '환율 조작'이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환율 조작을 언급한 건 이번만이 아닙니다. 한국을 비롯해 일본, 중국 등 미국에서 무역 흑자를 버는 나라는 죄다 환율 조작국이라는 식의 발언을 여러 차례 했습니다.

한국이 미국을 상대로 그렇게 많은 무역 흑자를 버는데, 어떻게 달러화가 강하고 원화가 약할 수 있냐(원·달러 환율이 어떻게 안 떨어질 수 있냐), 결국 환율을 조작하기 때문 아니냐는 주장입니다.

다만, 이번 '2+2 통상 협의'에서는 환율 조작은 직접적으로 거론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환율 조작 문제와 관련한 미국 측 언급이 있었냐는 질문에 최 부총리는 "전혀 그런 내용은 없었다"고 답했습니다.

1. 제2의 플라자합의?

미국이 관세를 밀어붙이는 것도, 환율 조작을 거론하는 것도, 배경은 매한가지입니다. 자신들의 막대한 재정 적자와 무역 적자 때문입니다.

미국의 재정 적자는 2020년 3.1조 달러로 역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했고, 2023년 1.7조 달러 규모로 줄기는 했지만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보다도 높습니다.

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은 138%. 일본, 그리스, 이탈리아 다음으로 높은 수준입니다.

무역 적자도 사상 최대입니다.

지난해 미국 무역 적자는 9,184억 달러, 1년 전보다 17% 늘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를 높여 수입을 막든지, 달러 가치를 떨어뜨려서 수입 가격을 높이고 수출 가격은 낮추는 걸 노리는 겁니다.

1985년 9월 22일, 미국은 프랑스, 서독, 영국, 일본 재무장관들을 뉴욕 맨해튼의 플라자 호텔로 불러들입니다. 다른 나라 통화 가치, 특히 엔화 가치를 대폭 올리기로 밀어붙여 합의를 끌어냅니다. 1달러에 250엔 하던 달러-엔 환율을 1달러에 120엔으로 바꿔버립니다.

40년 전 그 합의를 다시 추진할 수 있다는 '제2의 플라자합의' 가능성이 거론됩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윤상하 국제거시금융실장은 "미국이 애초에는 관세를 올리면 달러가 강세로 갈 거다, 그러니까 달러 약세를 위해 제2의 플라자 합의 같은 것도 투트랙으로 써보자 이런 구상을 했을 수도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윤 실장은 다만 "플라자 합의 같은 걸 성사하려면 관계국들이 신뢰와 합의가 있어야 하는데, 역사적으로 드문 일이다"고 지적했습니다. "의도적으로 환율을 낮추려면 시장에 누군가 개입해야 하는데 이건 외환시장 안정성 측면에서 감당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2. 기준금리 압박?

한국의 기준금리까지 압박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미즈호 은행 변정규 전무는 "트럼프 대통령 1기 때도 환율에 민감했다"며 "통화정책은 한국은행 몫이기는 하지만, 금리에 대한 압박이 있을 수 있다. 하반기에 마음대로 기준금리를 못 내릴 수도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현재 미국의 기준금리는 4.5%, 한국 2.75%와는 여전히 차이가 큽니다. 미국에 투자하면 그만큼 이자를 많이 받을 수 있다는 의미. 미국 달러가 강해지는 이유가 됩니다.

만약 기준금리를 건드려서 원화 강세를 유도하려면,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지금보다 더 올려야 합니다. 경기 침체 징후가 짙어진 우리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요구입니다.


3. 막무가내식 트집잡기?

관세 협상을 위한 트집잡기일 수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이승헌 숭실대 경영대학원 교수(전 한국은행 부총재)는 "미국이 환율을 문제 삼았는데 특별한 해법이 없다"며 "지금 우리는 오히려 원화 약세, 고환율 때문에 문제고 미국도 이 상황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미국이 한국을 환율 조작국이라고 지정할 가능성도 작다고 봤습니다.

이승헌 교수는 "우리가 일부러 원화 약세를 만들기 위해서 시장에 개입하는 게 아니라는 것은 명확하고, 당국에서도 그걸 충분히 설명할 것"이라며 "미국 재무부도 모니터링을 해오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트럼프 1기 때도 FTA 재협상을 할 때 우리가 환율에 개입한다고 트집을 잡으며 그걸 무기로 압박했다"며 "지금도 비슷한 상황으로 보인다"고 덧붙였습니다.

실제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선 한미 FTA 재협상을 추진하면서 강력한 환율 개입 방지 조항이 포함될 것으로 전망했지만, 최종 합의문에는 환율 관련 조항은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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